『2013헌다1 통합진보당 해산』

주문

  1. 피청구인 통합진보당을 해산한다.
  2. 피청구인 소속 국회의원 김O희, 김O연, 오O윤, 이O규, 이O기는 의원직을 상실한다.

개요

청구인은 통합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며 통합진보당의 해산과 소속 국회의원에 대한 의원직 상실을 구하는 이 사건 심판을 청구했다.

이 사건의 기록에 따르면, 정당해산심판청구 제출안은 대통령이 직무상 해외 순방 중이던 2013년 11월 5일 국무총리 황O안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었다. 정부조직법에 의하면 대통령이 사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에는 국무총리가 그 직무를 대행하는데,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인 경우는 일시적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사고’에 해당하므로 이 국무회의의 의결은 위법하지 않다.

정당해산심판제도의 의의와 정당해산심판의 사유

정당해산심판제도는 그 자체가 민주주의에 해악이 될 수 있으므로 깊이 주의해야 한다. 어떤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위헌적인 성격이 있다는 의심이 제기된다 하더라도, 일단 정치과정을 통해 위헌적인 측면이 진지하게 논박되고, 그 결과로 해당 정당의 정치적 지지기반이 상실되도록 함으로써 그 정당이 자연스럽게 배제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어떤 정당이 민주적 정치과정 자체를 거부하고, 민주주의의 근본 이념을 부정하는 경우에는 민주주의 체제의 근본 토대를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 따라서 제도적 방어장치로서 정당해산심판제도의 필요성이 인정된다.

헌법 제8조 제4항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해 해산된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은 공식적인 강령이나 당헌 외에도 소속 국회의원, 주요 당직자, 의사결정과정에 영향력을 가진 당원의 공식 발언, 기관지, 간행물 등으로도 판단할 수 있다.

한국사회의 특수성

분단과 이념대립, 그로 인한 체제위협은 오늘의 한반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 사건은 남과 북이 대립하는 현재 한반도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1980년대 한국사회의 운동 진영은 마르크스-레닌주의로 대표되는 사회주의 혁명이론을 수용했다. 운동 진영 내에서의 사상논쟁은 민족해방(자주파, NL) 계열과 민중민주(평등파, PD) 계열로 분화되었는데, 한국 사회를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로 파악하고 계급적 지배 체제의 극복을 중시한 평등파와 달리, 자주파는 한국 사회를 미 제국주의에 종속된 반 봉건사회 혹은 반 자본주의사회로 파악하고, 변혁방안으로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NLPDR)을 제시했다. 자주파 계열은 민족해방혁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미자주화와 반파쇼민주화, 제국주의에 결속된 한국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의미에서 남북통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자주파는 북한이 미 제국주의 세력에 대해 자주적인 입장을 견지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이 안에서도 주체사상을 수용한 주사파와 비주사NL이 분화했다.

1996년 정리해고를 법제화하는 근로기준법 중 개정 법률안이 국회에서 의결되자 노동운동계는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독자적인 후보를 추대하기 위해 국민승리21을 창당했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 이후, 국민승리21을 기반으로 민주노동당을 창당했다. 민주노동당은 내에서는 사회주의 노선 강화와 진보적 민주주의 노선, 북한 핵보유 선언에 대한 대응, 2007년 대통령 선거 후보자 권O길의 패배 원인을 두고 갈등이 심화되었다. 2008년, 결국 심O정, 노O찬, 조O수를 포함한 대부분의 평등파 계열 당원들이 탈당해 진보신당을 창당했다. 이후 2011년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에서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진보신당에서 분리)가 통합해 피청구인 통합진보당을 창당했다.

통합진보당은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후보자 순위 결정을 위해 당내 경선을 실시했는데, 이 경선에서 이O기는 일반명부 1위로 2번, 김O연은 청년대표로 3번의 순번을 배정받았다. 그런데 경선 과정에서 부정이 있음이 드러났고, 비대위가 구성되어 비례대표 후보 전원에 대한 사퇴를 권고했다. 하지만 이O기, 김O연은 국회의원 등록을 마치고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의원총회에서 두 의원의 제명안이 상정되었으나 부결됐고, 심O정을 비롯한 원내 지도부는 모두 사퇴해 진보정의당을 창당했다.

피청구인의 목적과 활동

피청구인의 강령상 목적

이 사건에서는 통합진보당이 추구하는 정치적 방향과 지향점이 문제된다. 통합진보당의 강령에 나오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해방정국 여운형, 박헌영, 김일성 등이 주장했다. 북한에서는 해방정국 조선과 같은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 단계에서의 진보적 민주주의가 주체사상을 구현한 우리식 사회주의로 발전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남한에서는 80년대 후반 자주파 계열 단체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를 강령으로 내걸었고, 그 내용을 자주, 민주, 통일로 표현했다.

진보적 민주주의의 강령 도입 경위

민주노동당 창당 시 강령 제정에는 자주파와 평등파가 함께 참여했는데, 이때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류사에 면면히 이어져 온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시켜 새로운 해방 공통체를 구현할 것이다."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자주파 당원 수가 크게 증가하며 노선 갈등이 공개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특히 자주파를 중심으로 민주노동당 강령에 명시된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의 계승, 발전’ 부분을 삭제[1]하고, '진보적 민주주의’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2007년 대선 패배 이후 평등파 의원들이 북한 관련 사안에 대한 대응 실패를 지적하며 탈당하자, 자주파 계열이 주요 당직을 차지했다. 그리고 2009년, 정책당대회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를 추구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했고, 2011년, 강령에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를 건설할 것"이라는 내용을 추가했다. 이러한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 도입과정에 일심회 사건에 관련된 북한 공작원 장O호는 북한에 "당 강령 개정의 필요성을 확산시키는 작업을 선행해야 한다"라는 등의 보고를 했다. 또한 북한은 2011년, 인천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공작원들에게 민주노동당이 채택한 진보적 민주주의를 진보대통합당의 지도 이념으로 관철시키라는 지령을 내렸다.

피청구인 주도세력의 성향

2012년 부정경선 및 중앙위원회 폭력 사건 등을 원인으로 평등파, OO연합, 전농, 민주노총 등 주요 인사들이 탈당하면서 통합진보당의 주도세력은 진보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추구하는 경기동부연합, 광주전남연합, 부산울산엽합 및 이들과 이념적 지향점을 같이하는 당원들로 구성됐다. 이들 중 일부는 민혁당 조직원, 민혁당 외곽단체 관련자, 일심회 사건 관련자, 실천연대 사건 관련자, 한국청년단체협의회 사건 관련자들이었다.

통합진보당의 주도세력은 진보적 민주주의의 주요 핵심가치로 자주, 민주(평등과 복지, 민중의 자유와 인권), 통일(평화)과 21세기의 특성을 살린 생태 등을 제시하고, 강령적 과제로는 민족자주(자주), 민주주의(민주), 민족화해(통일)를, 그 중 자주를 민주나 통일보다 선차적으로 달성해야 할 강령적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주도세력이 추구하는 자주적 민주정권은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의 정권이며, 진보적 민주주의는 민중주체의 민주주의, 즉, 민중주권론에 기초한 민중민주주의로서 민중정권을 지향한다. 주도세력은 자본가 계급이 실질적으로 주권을 갖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모순을 타파하고 민중민주주의 사회로의 전환을 단순한 양적 변화가 아닌 혁명으로 인식하고 있다.

피청구인의 진보적 민주주의

통합진보당의 강령 전문에서는 민중의 저항과 투쟁의 계승에 대해서만 언급할 뿐, 강령적 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투쟁방법을 언급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집권전략보고서>에서는 선거에 의한 집권과 저항권에 의한 집권을 주장하고 있다. 저항권은 공권력의 행사자가 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는 경우 이를 회복하기 위해 국민이 폭력, 비폭력, 적극적, 소극적으로 저항할 수 있다는 국민의 권리이자 헌법수호제도이다. 하지만 저항권은 공권력 행사에 대한 실력적 저항이어서 그 본질상 질서교란의 위험이 수반된다. 따라서 저항권의 행사에는 개별 헌법조항의 단순 위반이 아닌 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전체적 질서에 대한 중대한 침해나 이를 파괴하려는 시도가 전제되어야 하고, 이미 유효한 구제수단이 남아 있지 않아야 한다는 보충성의 요건이 적용된다. 또한 그 행사는 민주적 기본질서의 유지, 회복이라는 소극적 목적에 그쳐야 한다.

이러한 점에 비춰 봤을 때, <집권전략보고서>에 언급된 '저항권에 의한 집권’은 저항권을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체제를 개혁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주도세력은 대중투쟁이 전민항쟁으로 발전하여 그들이 말하는 저항권적 상황이 전개될 경우, 무력 등 폭력을 행사해 기존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헌법제정에 의한 새로운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해 집권한다는 목적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통합진보당의 이념적 지향점으로서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강령상 문언에 드러나는 의미와 주도세력이 진정으로 추구하고 있는 내용이 사뭇 다르다. 통합진보당 주도세력의 강령상 목표는 1차적으로 폭력에 의하여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이를 기초로 통일을 통하여 최종적으로는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종합할 수 있다.

북한식 사회주의 및 대남혁명전략과의 비교

통합진보당의 사회 인식, 변혁을 위한 강령적 과제, 변혁 주체와 범위, 변혁의 대상, 변혁의 전술적 방법, 목표, 연방제 통일 방안 등은 북한의 민족해방 민주주의변혁론의 그것과 전체적으로 같거나 매우 유사하다.

이O기 등의 내란 관련 사건

북한이 정전협정 폐기를 선언하고 남북관계가 전시상황에 돌입했다고 발표하자 이O기는 당시 정세를 전쟁의 시기로 인식하고 회합의 참석자들에게 조선혁명이라는 관점에서 물질기술적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석자들도 이O기의 지시에 따라 전쟁 발발시 북한에 동조하여 후방 교란 수단과 조직적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통합진보당 당대표, 국회의원, 최고위원 등 주요 당직자들은 공개된 녹취록이나 형사재판 과정 등을 통해 이O기의 내란 관련 회합의 내용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정당의 존립이 거론되는 심각한 상황에도 이O기 등을 전당적으로 적극적으로 옹호, 비호하고 있고, 회합 참석자들을 공직 후보로 추천했다.

서울고등법원 선고2014노762 판결[내란음모, 국가보안법위반(찬양·고무 등), 내란선동]에서 내란음모는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해 무죄로 판단했다. 국가보안법위반, 내란선동은 유죄로 판단해 징역 9년, 자격정지 7년을 선고했다.

결국 검사가 제출한 모든 증거들을 종합하더라도 피고인들이 내란을 음모하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 다만 피고인들이 위와 같이 전쟁 발발시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하기 위하여 구체적인 물질적 준비방안을 마련하라는 발언에 호응하여 국가기간시설 파괴 등의 폭력적인 방안까지 논의한 것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중대한 해악을 끼치는 것으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이다. 따라서 피고인들의 위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피고인들이 위 행위로 인해 반국가단체 활동 동조 등으로 인한 국가보안법위반(찬양·고무등)죄로 처벌될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피고인들을 내란음모죄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피고인들이 형법에서 정한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앞서 판단한 바와 같이 피고인들은 내란음모죄의 구성요건인 ‘내란범죄 실행의 합의’를 하는 단계에까지 이르지는 못하였다. 따라서 이 점을 지적하는 취지의 피고인들의 위 주장은 이유 있다.

다만 정당해산심판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므로, 통합진보당 구성원에 대한 내란음모죄나 내란선동죄가 인정되는지를 판단하는 형사사건과는 요건이 다르다. 활동의 내용이나 양상이 민주적 기본질서와 저촉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피청구인의 진정한 목적과 활동

통합진보당의 주도세력이 당을 장악하고 있음에 비추어 그들의 목적과 활동은 피청구인 통합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으로 볼 수 있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청구인의 진정한 목적과 활동은 1차적으로는 폭력에 의하여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최종적으로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피청구인의 해산 여부

피청구인의 목적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저촉되는지 여부

통합진보당의 진정한 목적인 북한식 사회주의는 수령론에 기초한 1인 독재를 통치의 본질로 추구하는 점, 국민주권원리를 부인한다는 점,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 내지 사상의 자유조차 향유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점, 복수정당간의 경쟁을 통한 민주적 정치 과정이 구현되기 어려운 점, 권력분립의 취지가 무색해질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와 근본적으로 충돌한다. 또한 통합진보당은 폭력을 행사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할 수 있다고 하는 바, 민주적 의사결정을 기본원리로 하는 민주적 기본질서에 정면으로 저촉된다.

피청구인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저촉되는지 여부

내란 관련 사건은 특히 통합진보당의 진정한 목적을 명백히 드러낸 활동이다.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들과 당원들이 내란을 선동하고 대한민국의 존립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방안들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것은 그 자체로 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함이 명백하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는 평화적인 방법에 의한 민주화운동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에 폭력에 의존해서만 사회개혁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민주주의 이념에 입각한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과거 폭력적 수단에 의지했던 투쟁의 신화가 오늘날 대한민국의 민주적 정당성을 갖춘 정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시대착오이다.

내란 관련 사건,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건, 중앙위원회 폭력 사건 및 OO을 지역구 여론조작 사건 등 앞서 본 통합진보당의 여러 활동들은 내용적으로는 국가의 존립과 민주적 의사형성,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것이고, 수단의 측면에서는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 위해 폭력, 위계 등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민주주의 이념에 반하는 것이다.

피청구인 소속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 여부

만약 해산되는 위헌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의원직을 유지한다면 정당해산결정의 실효성을 제대로 확보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정당해산결정으로 인해 신분유지의 헌법적인 정당성을 잃게 되므로 그 의원식을 상실되어야 한다. 따라서 정당해산심판제도의 본질적 효력과 정당해산결정의 목적을 실효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들 모두 의원직을 상실시키기로 한다.

결론

가. 그렇다면 피청구인의 해산을 명하고, 피청구인 소속 국회의원들 모두의 국회 의원직을 상실시키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이 결정은 아래 9.와 같은 재판관 김이수의 반대의견과 아래 10.과 같은 재판관 안창호, 재판관 조용호의 보충의견이 있는 외에는 나머지 관여 재판관들의 일치된 의견에 의한 것이다.

나. 이 사건은 우리 헌정사 초유의 정당해산심판사건이지만, 세계적으로 볼 때 정당해산제도가 없는 국가들도 많다. 끊임없는 대화와 토론, 그리고 설득과 같은 민주적 방식이야말로 헌법의 근본 질서를 파괴하려는 정당을 제어하고 그들의 정치적 기반을 허물어뜨릴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인식을 달리 하여, 우리의 헌법제정자들이 헌법에 정당해산제도를 규정해 두었다면, 이는 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하는 정당에 대한 우리 헌법의 해법이 그렇지 않은 헌법의 해법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재판소는 이 결정으로 인해 우리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진보정당의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 해산결정은 북한식 사회주의 이념을 추구하는 정당이 다원적 세계관에 입각한 우리의 민주 헌정에서 보호될 수 없음을 선언한 것일 뿐이며,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에서 새롭고 대안적인 생각들이 얼마든지 제기되고 논의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오히려 이 결정을 통해 북한식 사회주의 이념이 우리의 정치영역에서 배제됨으로써, 그러한 이념을 지향하지 않는 진보정당들이 이 땅에서 성장할 수 있는 계 기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한편, 우리는 피청구인의 해산이 또 다른 소모적인 이념 논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경계한다. 피청구인 주도세력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한다는 우리의 결론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한 지난 1년간의 오랜 심리 끝에 나온 것이고 우리 재판부에서도 다른 시각이 있는 만큼, 과거에 위 주도세력과 무관했던 피청구인의 일반 당원들 및 경우에 따라 피청구인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도 했던 다른 정당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이념 공세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결정을 통해 향후 민주적 기본질서의 존중 아래 한층 더 성숙한 민주적 토론과 우리 사회의 이념적 다양성이 실현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재판관 김이수의 반대의견

나는, 정당해산심판제도의 의의와 정당해산심판의 사유에 대하여는 다수의견과 의견을 같이하나, 피청구인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고, 나아가 해산의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다수의견의 판단에는 반대하므로 다음과 같이 나의 견해를 밝힌다.

청구인은 '진정한 장기 목적, 은폐된 목적’을 입증하는 것이 정당해산심판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증명되어야 할 것이 참임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통합진보당은 당비를 납부하는 진성당원의 수만 3만여 명에 이르는 정당이다. 통합진보당 대다수 구성원의 정치적 지향이 어디에 있는지 논증하는 과정에서 그 구성원 중 극히 일부의 지향을 전체의 정견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내란 관련 사건에서 구체적인 폭력적 방안을 제시한 발언들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구체적인 위험성이 있다. 그러나 이O기 등의 발언은 통합진보당의 기본노선과 현저히 다르고, 이 사건 모임의 참석자들이 통합진보당 전체를 장악했다고 볼 수 없다.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건 등 그 밖의 문제되는 활동들은, 청구인의 증거만으로는 통합진보당이 조직적으로 이와 같은 행위를 통해 스스로 당내 민주주의 절차를 파괴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 이러한 사건들이 통합진보당의 당내 민주주의를 훼손한 것은 인정된다. 하지만, 당 전체가 조직적, 지속적으로 이와 같은 활동을 한 것이 아니고, 다른 정당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정당활동을 영위하여 온 점을 고려했을 때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구체적 위험이 있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

법정의견은 통합진보당의 주도세력을 확정하고, 그들의 이념적 지향점을 밝힌 다음, 주도세력이 인식하는 진보적 민주주의의 의미가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이러한 추론은 주도세력이라는 자의적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당을 주도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 범주는 어느정도인지 제시하지 않았고, 주도세력의 개별 구성원이나 외연도 확정하지 않았다.

나는, 헌법 제8조 제4항이 요구하는 정당해산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이 사건 정당해산심판청구를 기각하여야 한다고 본다. 이는 피청구인의 문제점들에 대해 면죄부를 주고 피청구인을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오랜 세월 피땀 흘려 어렵게 성취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성과를 훼손하지 않기 위한 것이고, 또한 대한민국 헌정질서에 대한 의연한 신뢰를 천명하기 위한 것이며, 헌법정신의 본질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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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주의적 변혁을 당면 주요과제로 내세운다면 대중들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기득권세력과의 치열한 투쟁헤서 열세를 면치 못할 것이며, 그럴 경우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없게 된다” <21세기 진보적 민주주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