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도시 서울 철도: 기후위기 시대의 미래 환승법』

일본 측의 지침이 흥미롭다. 이들은 계산 단위를 차내 시간으로 잡았다. 그리고 환승 1회는 실제 시간 소비와 무관하게, 즉 소요 시간이 실제로는 수십 초 정도라도 차내 시간 10분과 같은 가치로, 이와 별도로 환승에 들어가는 소요 시간은 차내 시간의 2배와 같은 가치로 계산하라는 지침을 세워 두었다. 실제 철도 이용자로서 자문해 보아도 느낌과 동떨어진 값은 아니다.

좀 더 세밀한 접근을 위해 국내 학계의 작업을 사용하자. 이들은 실제 국내망의 상황과 한국인들의 응답을 사용해 환승저항 현상에 접근했다. 설문 조사와 실제 통행 데이터를 통계적 기법으로 분석하여, 역의 물리적 요인(수평 거리, 상승 거리, 하강 거리, 에스컬레이터 유무)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선호 함수를 가지는지 분석한 연구 방향이 우선 확인된다. 이경재가 제안하는 간단한 계산식이 이 방향을 구체화 수치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체감 환승 시간(분) = (0.012 수평 이동 거리) + (0.08 6 × 올라가는 계단 수) + (0.0597 x 내려가는 계단 수) + (2.33 x 에스컬레이터 개수)

신도시 건설과 함께 개통한 분당선은 죽전 이북 구간에서 완행으로만 운행하고 있으며, 때문에 이 일대의 광역 교통 수요 가운데 상당 부분은 방대한 규모의 광역버스가 처리하고 있는상황이다. 일례로 이 지역의 광역버스를 상당수 운영 중인 KD운송그룹의 전체 버스는 약 5000대 수준이다. 경기도 시내버스 1만 7000대의 30%, 그리고 서울 버스7000대의 70%에 달하는 수다. 인천 버스(약 2000대)에 비해서는 두 배가 넘는다.또 수도권 동남권의 광역버스가 상당수 등록된 경기도 광주시의 시내버스 등록 대수는 2000대에 달한다.(각 년도 광주통계연보 참조) 인구 30만 수준인 이 도시의버스 수가 인구가 10배 많은 인천만큼 많다는 사실은 그만큼 주변 지역에 광역버스가 발달했다는 점을 방증한다.

신분당선 투자는 이 축선의 광역철도망이 빈약했기 때문에, 판교 신도시등의 개발과 맞물려 이뤄진 것이다. 이 노선은 속도 면에서는 판교나 수지, 광교 주민들로부터 비교적 만족스럽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제는 이 노선이 민간 투자 노선이라는 점이다. 이용객들은 운임에 불만을 표하지만, 사업자는 언론을 통해 재정상황이 어렵다고 여론에 호소하고 있다. 이 회사의 주요 재무지표는 도표 1과 같다.영업 비용에서도 손실이 발생하는 한편, 대규모의 금융 비용 때문에 당기순손실이 발생하는 구조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업 구조가 지속될 수 있을지, 아니면 철도공사가 개입해야 사업 구조를 정리할 수 있을지는 여기서 검토하지 않겠다. 여기서는 다만 철도 산업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재무적 상황 역시 시야에 넣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 싶다.

2017년 여름 국토부는 분당선의 급행 운행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야탑, 그리고 수서 인근 역 1개, 총 2개 역에 대피선을 추가해 전 구간 급행 운영을 한다는 것이 그 골자다. 이런 계획이 어떤 귀결로 이어지든, 지하 역사에 대한시공은 매우 비싼 일이라는 점을 이 투자에 대한 앞으로의 평가에서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런 비싼 값을 치러야 할 만큼 1기 신도시 철도와 이후의 투자가 충분히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사실 또한 기억할 필요가 있다.

GTX에 대한 열광은 이 계획이 기존 노선과는 완전히 독립적이고 새로운 망을 약속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더욱 강력하게 퍼졌을 것이다. 경기도는 세 노선을 동시에 개통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펼치기도 했다.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가 나타나 기존 체계에 대한 불신을 완전히 씻어 버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다는, 일종의 역사철학적 약속이 수도권 광역망을 배경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기존 광역망의 주축이 낡고 오래되었으며 승객들조차 질 나쁜 사람들처럼 보인다는 세평을 듣는 1호선이라는 점은 이들 새로운 노선 계획에 많은 연선 주민들과 지방정부가 열광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을 법하다.

GTX A선은 왜 비교적 괜찮은 평가(비용편익비 1.33)를 받았느냐는 질문에서 다시 출발해 보자. 이런 평가의 핵심에는, 이미 사업이 진행 중이며 추가 비용을 투입할 필요가 없는 삼성~동탄 급행 철도에서 북상하는 광역 수요를 그대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있다. 반면 GTX B선은 이미 강력한 경쟁력을 갖춘 경인선과 함께 달리는 노선을 선정하는 실책을 범했으며, GTX C선으로 북상하거나 남하하는 교통량은 A선만큼 많지 않은 데다 기존 망 계획의 도움을 받기도 어려웠다.

세 노선 사이의 차이는 주변 광역망과 맺고 있는 관계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GTX A선은 수요가 비교적 안정된 선구와 직결 운행하는 개념 덕분에 상당한편익을 내놓는다. 반면 GTX B선은 지난 120년간 철옹성 같은 지위를 구축한 경인선에게 도전하는 우를 범했으며, 2014년 기존 계획의 GTX C선은 주변 망과의 관계가 어중간한 덕분에 순편익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

결국 GTX가 내놓고, 많은 사람이 열광했던 약속은 거대도시권 시민들의요구를 만족시키기에는 미진한 수준이었다. 27km/h에 준하는 표정속도를 내는 망을, 한 번에 대대적으로 건설한다고 하더라도, 25~2km/h 속도로 거점 사이를 달리고 있는 기존 광역망과 도시철도의 지지를 충분히 받지 못한다면 그 효과는 반감될수밖에는 없다. 또한 경부선, 경춘선, 중앙선, 서해선, 중부내륙선과 같이 27km/h에 준하는 표정속도를 내는 기존선 또는 신설 재래선 특급망과 별개로 운행한다는것 역시 이 망의 효과를 반감시킬 것이다. 이들 노선에 대한 투자는 기존 광역망으로는 채우기 어려웠던 빈틈을 주변 망과 최대한 협력하여 메우는 역할을 할 때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일 것이다.

물론 수도권 광역망의 풍경을 완전히 바꿔 버릴 미래 기술은 분명 언젠가 도래할 것이다. 하지만 GTX는 그런 기술적 대안은 아니다. '환승 · 접근 저항’이라는 변수를 여기서 다시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학계는 GTX의 결정적인 난점이 이 부분이라는 점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GTX 노선들은 이 문제를 충분히 극복하지 못하고 중요한 약점을 드러냈다. 직결이나 간편한 환승 동선을 구축하여 환승저항을 줄이고, 기존선과 기존 거점역을 더욱 철저히 활용하여 접근저항을 감쇄하는 모습은 A선과 C선의 일부에서만 확인할 수 있었다. 고속화와 대심도화, 그리고 별도 선로 구축을 강조하는 계획의 방향이 GTX 계획을 이렇게 만들었을 것이다.그러나 실제로 많은 사람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망을 건설하기 위해 이보다 더욱 중요한 요소는 망의 유기성 강화’라는 요소다.

결국 GTX의 개념은 수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아주 중요한 항의가 한 가지 들어올 것이다. 서울에 이토록 대규모의 투자를 집중시킨다면, 이른바 '지방 균형 발전’은 뒷전이 되는 것이 아닌가? 계획의 공간적 범위가 전국을 모두 포함한다는 반론, 한국의 철도망은 서울을 가장 중요한 연결점으로 삼아 연계되어 있는 구조이며 대중교통이 가장 효율적인 곳은 거대도시 중심부라는 말만으로는 여기 답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여기에 답하는 길은 다음 질문 속에 있다. 철도 도시 서울’이라는 목표가 실현되지 않은 어떤 가능 세계가 있다고 해 보자. 이 가능 세계와 ‘철도 도시 서울이라는 목표가 실현된 가능 세계 사이에 있는 가장 중요한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내가 규정한 이중 교통 환경이 완화되지 않은 채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남아 있거나 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것이 가장 큰 차이일 것이라고 본다. 물론 인간 활동의 밀도 차이 덕분에 이중 교통 환경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그럼에도, 이중 교통 환경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는 가능하고 또 각 지역의 스케일에 맞게 이뤄질 수 있다. 충청 남부, 영동, 전라, 경상 지역에서도, 광역특급과 광역급행의 층위를 정비하는 한편 환승 할인을 비롯한 시스템 통합이 가속화되어야 한다. 서울의 전국망 정비는 이들 지역의 광역망 운행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이들 지역과 수도권 중심부의 교통 환경 차이를 완화할 수 있는 중요한 투자다.

이중 교통 환경의 차이를 완화하는 작업이 개인의 활동에 어떤 의미로 다가올 것인지는 이번 장 2절에서 잠시 짚어본 대로다. 나는 생산자서비스에 종사하는 고학력 전문가에게 필요한 이동 활동을 예로 들었지만,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거대도시의 중심부에는 그 높은 밀도 덕분에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 역시 밀집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인구의 규모가 작은 지방에서 벌이는 일은, 거대도시 중심부의 인구와 좀 더 가깝게 연결되어야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어 성공할 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다. 하지만 중심부에서 출발하는 전국망 열차를 각 지역에 충분히 배분할 수 없다면, 이런 가능성은 줄어들고 말 것이다. 바로 이런 메커니즘을 타고, 서울 지역 전국망 병목의 해소는 지방 균형 발전 과정의 마중물로 작동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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