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도시와 도구도시
도시가 생물적인 도시와 도구적인 도시로 나뉜다는 생각.
종로에서 일하는 친구와 대화하다가, 종로와 강남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도시감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도시가 '생물적인 도시’와 '도구적인 도시’로 나뉜다고 느낀다. 종로가 생물적인 도시로서 실존을 추구한다면, 강남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설계되어 그 목적을 충족하기 위해 작동하는 도시다. 목적있는 도시에는 모순이 없고, 모순이 없는 것은 지루하다. 수수께끼가 없는 도시에서 재미를 찾기 위해서는 소비해야 한다.
종로에는 모순이 가득하다. 한옥이 즐비한 거리 너머에 높은 유리빌딩이 보인다. 골목 모퉁이를 돌았을 때 나타날 풍경은 예측을 불허한다. 종각부터 종로3가, 5가, 흥인지문, 동묘까지 버스를 타면 시시각각 풍경이 변한다. 수수께끼가 있는 도시는 건축물의 가격이 아니라, 그 건축물이 겪은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든다. 수십년을 견뎌온 길과 건물에서는 실존의 의지가 엿보인다. 그래서 나는 종로에서 강한 생명력을 감각한다.
나는 여전히 서울에 살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한번씩 강북에 가면 그 역동성에 감탄하곤 한다. 이런 도시 감각이 거주민이 체감하는 삶의 질과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구도심 특유의 매력과 풍경이 종종 그립곤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