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프리미엄』

기능론적 인적자본론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개리 베커(Gary S. Becker)가 제안한 인적자본론의 핵심은 교육이 개인 노동자의 생산성을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교육과 생산성 간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성립한다는 게 인적자본론의 중심 논지다. 더 많은 교육을 받은 노동자가 더 높은 임금을 받는이유는 교육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 때문이다. 자본(capital)이란 과거의경제활동으로 축적된 부(stock)로 차후의 생산을 위한 수단이 된다. 더많은 자본을 투자하면 평균적으로 더 높은 생산성을 올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손수레를 이용하는 것보다 트럭을 이용하면 더 많은 짐을 더빨리 더 멀리 운송할 수 있다. 자본을 조금만 투자하여 저렴한 손수레를 구입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자본 투자가 요구되는 트럭을 구입하면운송의 생산성이 높아진다. 손수레에 누적된 자본보다 트럭에 누적된자본이 크기 때문이다. 인적자본론은 교육은 사람에게 자본을 누적시키는 효과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교육을 받으려면 시간과 노력,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데, 이 과정을 통해 자본이 개인의 신체에 누적되고 개인의 생산성이 높아진다.

여기서 바로 반론이 제기될 것이다. 실제 직장에서 사용하는 노하우는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무관하고 모두 직무를 수행하면서 배운 것이라고, 교육을 통해 습득하는 지식과 인적자본은 구체적인 지식에 한정되지 않는다. 인적자본론은 직장에서 훈련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빨리습득할 수 있는 학습능력 자체가 교육을 통해 취득된다고 본다. 직무에 특화된 숙련(specific skill)뿐만 아니라, 훈련적합성(trainability)을 키우는 일반적 숙련(general skill)이 교육을 통해 길러진다. 고등학교 때머리를 쥐어짜며 미적분을 풀면서 사회에 나가서 한 번도 사용할 일이없는 이 공부를 왜 하냐고 수없이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다른 모든 업무 관련 지식을 빨리 습득할 수 있는 일반적 숙련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미적분을 풀면서 훈련적합성을 키우고, 궁극적으로 회사에서 어떤 업무를 익히는 개인의 생산성이 높아진다.

보다 구체적으로 교육이 개인의 생산성을 높이는 경로는 세 가지다. 하나는 교육이 개인의 인지능력을 향상시킨다.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은 문맹이다. 읽을 수 있고, 기본적인 셈을 할 수 있는 사람과 문맹의 차이는 크다. 해방 직후 한국의 문맹률은 78%에 달했다. 글을 읽고 쓸 줄 알면 국민 전체 상위 20%에 드는 지식인이었다. 지금은 직업지위가 높다고 간주하지 않을 우편배달원이 20세기 초기의 관점에서는 상당한 숙련을 요하는 직업이었다. 배달을 하기 위해서는 글을 읽을 수 있고, 지리를 기억하고, 운송수단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교육은 읽고 계산하는 기본적인 인지 능력을 갖추게 해준다. 교육이 개인의 생산성을 높이는 두 번째 경로는 일에 직접 사용되는 구체적인 훈련을 제공한다. 통계학을 배우지 않으면 회귀분석을 할 수 없고 양적 방법을 이용하여 사회현상을 검증하는 사회과학자가 될 수 없다. 용접훈련을 받지 않고 선체 용접 기술을 읽힐 방법이 없다.

마지막으로 교육은 사회적으로 다른 사람과 같이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준다. 1990년대에 유행했던 곡, “교실이데아”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은 “매일 아침 일곱시 삼십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리 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 넣고 있다고 비판한다. 현대인들은 직장에서 출퇴근 시간을 지키는 것을 너무나 당연히 생각한다. 하지만 정시 출퇴근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동이 아니다. 매일 아침 7:30까지 정시에 등교하고 수업이 파한 후에 하교하는 교육을 통해, 정해진 시간을 지키고 정시에 출퇴근하는 습관이 길러진다. 19세기와 20세기에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릴 때, 제3세계를 침범한 제국주의 자본주의자들은 항상 제3세계 인민들이 시간을 지키지 않고 훈련되지 않아 게으르다고 비난하였다. 남미를 침범한 포르투갈인들이 그랬고, 일본에 도착한 미국인들이 그랬고, 한국을 식민지화한 일본인들이 그랬다. 의무 교육이 보편화되지 않은 모든 지역의 인민들이 자본가들로부터 게으르다는 비난을 받았다. 한때 경제동물로 지칭되던 일본인이나, 지금도 세계 최장시간 노동을 하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실소를 금할 수 없을 것이다. 교육을 통해 시간을 지키고, 다른 사람과 같은공간에서 행동하는 법을 배우고, 대화하고 협동하는 방법을 배운다.

교육은 이렇게 개인의 생산성을 향상시킨다. 똑같은 말을 좀 더 사회과학적으로 하자면, 교육은 개인의 생산성 상승이라는 결과를 초래하는 원인이다. 인적자본론은 교육의 효과가 자본주의 경쟁 시장과 결합할 때 교육과 노동시장 성과의 정(正)의 상관이 나타난다고 본다. 경쟁 시장에서 생산성이 높은 노동자가 선호되고 생산성은 교육과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교육과 노동시장 성과는 긍정적 상관관계가 있다. 교육이 원인이고 노동시장 성과가 결과이다.

인적자본론의 관점에 따르면 소득 불평등이 커지는 이유는 교육에 따른 노동자의 생산성 격차가 커졌기 때문이다. 해결 방법은 당연히더 많은 교육을 통하여 생산성이 낮은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인적자본론은 교육팽창이 예상치 못한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본다. 교육팽창은 한국 사회에서 생산성의 전반적향상을 가져오므로 교육팽창은 걱정할 현상이 아니다. 교육팽창이 그만큼의 생산성 향상을 가져왔는지는 논란이 될 수 있지만, 교육팽창이생산성 저하를 가져올리는 만무하다.

선별 이론

교육과 노동시장 성취의 긍정적 상관관계를 설명하는 두 번째 이론은 선별이론(screening or signal theory)이다. 인적자본론과 선별이론의가장 큰 차이점은 교육이 개인의 생산성을 직접적으로 향상시키는지의여부다. 선별이론에 따르면 교육은 능력 있고, 새로운 것을 학습하고,혁신을 주도할 재능이 있는 개인을 선별하여 승인하는 효과를 가진다.

교육 그 자체는 개인의 능력을 제고시키지 않는다. 노동시장에서 교육은 개인의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signal)로 기능하고, 교육은 이런 능력있는 개인을 선별(screening)하기 위한 과정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교육 과정에서 습득한 지식은 실제 생산 현장에서 별로 쓰이지 않는다. 일하는데 필요한 지식은 직무훈련(on the job training)과 노동시장의 경험을 통해 길러진다. 두 사람이 똑같은 학교에서 똑같은 전공을 공부하였고, 비슷한 성적을 거두었더라도, 다른 산업에 종사하면서 오랜 시간이 지나면 두 사람의 해당 산업 생산성은 확연히다르다. 생산성이 교육을 통해 결정되지 않고, 산업 현장에서의 경험에따라 달라진다는 증거이다. 개인의 생산성 향상을 길러주고 가르치는사람은 학교의 선생님이 아니라 직장의 ‘사수’다. 그렇다면 교육은 왜중요한가? 왜 교육과 노동시장 성취 간에 긍정적 상관이 있는가?

사회를 보다 생산적으로 조직하기 위해서는 능력 있고 생산성 높은개인을 중요한 위치에 할당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누가 능력 있고생산성이 높은지는 알기 매우 어렵다. 누가 능력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정보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값비싸다. 오랜 기간같이 지내보면 그 사람의 능력을 파악할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고용주의 입장에서 입사지원서를 낸 그모든 사람과 같이 장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교육은 고용주의 입장에서 다른 어떤 정보보다도 강력하고 신뢰할 만한 개인의 능력에 대한정보를 제공한다. 인지 능력, 성실성, 다른 사람과의 비교 우위에 대한많은 정보를 교육이 제공한다. 혹자는 어렵게 시간과 돈을 들여 교육을 하지 말고, IQ 검사로 인재를 선발하자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IQ검사는 인지 능력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성실성은 알 수 없다. 성실성 파악은 어려운 일이다. TV 프로그램 <골목식당>에서 백종원이홍탁집 아들의 성실성을 점검하기 위해 매일 문자를 받았는데, 백종원도 이를 힘들어했다. 고용인의 성실성을 알기 위해 고용주가 시간을투자해 성실하게 점검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이에 반해 교육은 인지 능력과 성실성에 대한 정보를 동시에 제공한다. 아무리 IQ가높은 사람이라도 노력없이 명문대에 진학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면접을 통해서 지원자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람을 잠깐 만나보고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다고 과신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편향으로 이어지기 쉽다. 편향에근거해서 사람을 배치하고 할당하면 개인의 생산성에 따라 효율적으로일자리가 배치되지 않고 능력 있는 사람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자리에, 능력 없는 사람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확률이 커진다. 기업의 생산성과 이윤은 낮아지고 사회 전체적으로 경제 발전이 저해된다. 삼성그룹에서는 면접의 편향을 줄이기 위해서 관상을 본다는 웃지 못할 증언도 있다. 교육은 능력에 대한 지표를 제공함으로써 고용주에게 누가 업무 능력이 있는지 강력한 신호를 준다. 사회 전체적으로 업무 할당의 효율성을 높인다.

교육은 생산성, 노동시장 성과와 관련되어 있지만, 교육이 직접적으로 생산성과 노동시장 성과를 높이기 때문은 아니다. 교육 그 자체는개인의 생산성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대신 교육의 지표 기능을 활용함으로써 업무 할당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교육은 선발의 효율성을올려서 간접적으로 생산성을 높인다.

선별이론에 따르면 교육이 생산성을 직접 높이지 않기 때문에 절대적인 교육 수준보다는 교육의 상대적 비교가 중요하다. 1장의 논의와 연결시킨다면, 지위재로서의 교육의 기능이 가장 중요하다. 노동시장에서 교육은 능력 있는 개인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할당 효과가 가장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교육을 받은 사람을 선발하면 된다.이 관점에 따르면 교육팽창은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생산 현장에 투입되지 않고 교육 기관에 남아있으면 생산성 향상에 직접 도움이 안되는 지식 습득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고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저해한다. 고졸자의 80% 이상이 3차 교육 기관에 진학하는 한국의 교육팽창은 경제 성장에 도움이되기보다는 방해가 된다. 학력을 가리는 블라인드 채용은 교육의 순기능을 제거하고 사회적 효율성을 낮추는 어리석은 채용 방식이다.

선별이론은 교육을 통해 소득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지는 별로 없다고 본다. 교육 방식이나 선발 과정을 바꾸면 누가 고소득을올리는지만 바뀔 뿐, 소득불평등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자리만 바뀔 뿐 구조가 바뀌지 않는 현상에 대한 직관적인 예로 자주 거론되는비유가 “의자 앉기 게임" (game of musical chairs)이다. 노래를 부르며의자 주위를 돌다가 노래가 멈추면 의자를 차지하는데 의자의 개수는항상 참여자보다 모자라서 누군가는 탈락한다. 어떤 노래를 부르는 의자 주위를 도는 방식을 어떻게 바꾸든 누군가는 의자에 앉지 못하고탈락한다는 사실에 변함이 없다. 마찬가지로 대학 선발 과정을 어떻게바꾸어도 누가 엘리트 대학에 선발되는지 할당의 방식만 바뀔 뿐 불평등이 줄어들지도 않고 파이가 커지지도 않는다.

학벌주의

영어로 크리덴셜리즘(Credentialism)을 번역한 학벌주의는 혹자는 학력주의라고도 하고, 혹자는 간판주의, 혹자는 영어 발음 그대로 크리덴셜리즘이라고 부른다. 이 중 학력주의라는 번역이 가장 많이 쓰이지만, 학력주의는 인적자본이나 선별이론과 구분되는 크리덴셜리즘의 특징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 여기서는 크리덴셜리즘을 학벌주의라고 칭하도록 하자. 학벌주의는 선별이론과 마찬가지로 교육이 개인의 생산성을 직접 증가시키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선별이론과 학벌주의의 가장큰 차이점은 학력과 생산성이 긍정적 상관을 보이는가 여부이다. 선별이론은 학력이 직접적으로 생산성을 향상시키지는 않지만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개인을 선별하기 때문에 학력과 생산성은 긍정적 상관을 가진다고 믿는다. 이에 반해 학벌주의는 학력과 생산성에 아무런 상관도 없지만 사회, 문화적으로 학력이 높은 사람이 소득이 높은 직위와 일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딱히 학력과 생산성의 상관관계가 있지는 않지만, 상위계층이 학력이 높은 경향이 있고, 학력은 능력의 결과라고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상위계층은 학력을 계급재생산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이용한다. 스카이 대학 출신이 능력이 더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이들 스카이 출신의 네트워크가 타대학 출신의 일자리 진입을 막고 기회를 독점한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한국에서 학벌주의가 능력에 관계없이 학벌에 따라 노동시장 성취도가 달라지는 현상을 기술하는 데 쓰이기에 크리덴셜리즘의 번역으로 학벌주의가 그나마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학벌주의는 문화자본을 통한 계급 재생산론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문화자본은 특정한 지위와 정체성을 나타내는 심벌로 작동한다. 계급 간의 구별짓기는 다양한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흔히 교양이라고 표현되는 문화자본은 특정 계급의 멤버십 표식이다. 자본가인 고용주는 유사한 문화자본을 공유하는 지원자를 선발함으로써 같은 선호를 공유하는 계급을 재생산한다. 교육을 통해 상류층의 고급문화와 하류층의 저급문화를 구분한다. 칸영화제의 그랑프리와 아카데미의 최우수 감독상, 작품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계급 격차를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지만 명백히 존재하는 “냄새”로 풀어내는데, 현실에서 교육이 바로 이 냄새의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에서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부모의 자녀가 그렇지 않은 자녀보다 더 좋은 대학에 가고 더 학력수준이 높은 것은 이제 뉴스도 아니다. 금수저와 흙수저를 가르는 수저계급론 담론이 한참일 때 한 신문은 성적도 직업군도 대물림되고 시험을 통한 출세는 허상이라고 보도하였다. 한국에서 부모가 자본가나 전문직이면 대학 진학률이 80% 후반대지만, 노동자의 자녀는 60%선에 그친다. 더욱이 교육팽창과 더불어 그 관계가 강화되었다는 연구도 있다. 심지어 공무원 시험도 출신 계급에 따라 그 성과가 달라진다.

학벌주의는 학벌의 재생산이 능력보다는 계층적으로 우위에 선 집단의 문화적 재생산 기제이고, 이 학벌을 자본주의의 계급 재생산과 불평등 정당화를 위해서 활용한다고 가정한다. 학력이 높은 노동자가 더 높은 소득을 올리는 이유는 이들이 생산성이 높기 때문이 아니다. 능력주의 신화 덕분에 계급재생산이 쉽게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불평등이 커지더라도 저소득층은 자신들의 학력이 낮기 때문이라고 믿고 높은 불평등 구조 자체를 깨뜨리려고 하지 않고 불평등을 내면화한다.

학벌주의에서 교육팽창은 낮은 계층의 자녀들이 고등교육을 받는 것에 대한 상위계층의 대응이다. 하위계층 자녀들이 대학에 진학하면, 상위계층은 대학원 진학, 대학 내에서의 위계 강화로 구별짓기를 지속시킨다.

세 이론 중에서 어느 이론이 맞는지 한 가지 연구로 검증하기는 어렵다. 현실은 아마도 이 세 가지 이론이 주장하는 교육의 여러 측면이 뒤섞여 있을 것이다. 교육은 개인의 생산성을 강화하고, 노동시장에서의 시그널로 작동하며, 동시에 중산층의 계급 재생산 기제로 작동한다. 인적자본론과 관련해서 의대에서 배운 내용이 의사의 직무에 그대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가정하는 것은 무리다. 평균적으로 상위권 대학 출신의 노동자가 그렇지 않은 노동자보다 회사에서 직무 학습 능력이 뛰어난 것도 사실이다. 월스트리트에서 캔사스대에서 경영학, 재정학, 경제학, 통계학을 공부한 졸업생을 제쳐두고 영문학을 전공한 아이비리그 출신자를 고용하는 이유는 영문학이 월스트리트의 증권 투자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하버드대 출신은 어떤 내용이든 새로운 직무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졸업대학을 증권 관련 업무 학습 능력의 시그널로 여긴다. 학벌주의는 실증 자료를 이용한 경험 연구에서 가장 덜 뒷받침되는 편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진실의 일부를 밝히고 있다.

사회계층과 관련된 대학원 교육의 가장 큰 논쟁점은 누가 대학원 교육을 받고, 졸업 후 노동시장의 성취는 출신 계층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가이다. 대학 교육은 “위대한 평등의 촉진자"로 여겨진다. 미국에서 대학 진학까지는 가족의 계층적 배경에 영향을 받지만,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가족 배경의 영향은 사라진다. 금수저와 대비되는 흙수저의 불이익은 대학 진학까지이고, 일단 같은 대학에 진학하면 그 이후의 대학원 진학과 노동시장 성과는 개인의 선택이 된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기존 연구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가 잇따르고 있다. 가장 유명한 연구는 플로렌시아 토치(Florencia Torche)의2011년 논문이다. 이 논문에서 토치는 가족배경과 노동시장의 성과는 학력수준에 따라 U자 - 형태(the U-shaped pattern)를 보인다고 보고하였다. 학력수준이 올라가면서 노동시장 성취에 끼치는 가족배경의효과가 점점 줄어들어 대학 교육에 이르면 금수저 흙수저의 효과가 사라지는데, 대학원 교육에서 금수저 흙수저 효과가 다시 나타난다. 저학력층에서는 부모의 사업을 물려받는 등 출신 계층에 따라 소득에 차이가 있지만, 대학 졸업자들은 교육 수준이 비슷하면 출신 가족 배경에 상관없이 비슷한 소득을 올리는데, 대학원 졸업자들은 설사 교육 수준이 같더라도 금수저 출신의 소득이 흙수저 출신의 소득보다 높아지는 현상이 다시 나타난다. 토치는 U자 형태를 소득뿐만 아니라, 직업 위계, 재산 등에서도 확인하였다. 대학원 졸업자에서 출신 배경의 효과가 사회경제적 지위 성취에 다시 나타나는 현상은 미국에 한정되지 않는다. 프랑스와 영국에서도 가족 배경의 효과가 대학원 졸업자에서 커지는 현상이 목도되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대학원 졸업자는 학위 취득 후 취업이나 연줄에서 부모의 영향을 학사 학위 취득자보다 더 받는 것일까? 아니면 대학원 교육 과정에서 뭔가 다른 계층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교육수준에 따른 가족배경과 노동시장 성취의 U자 형태 관계의 원인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다. 필자가 알기로 현재 여러 연구자들이 이 문제에 주목하여 연구를 진행 중이다. 오병돈 · 김창환의 논문도 그중 하나이다. 이 연구는 대학원 졸업자에서 더 커진 가족 배경의 영향은 연줄 동원 등 노동시장 내부의 메커니즘 때문이 아니라 교육 과정 자체의 계층화에 기인한다고 밝히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 메커니즘을 제기하고 있다. 첫째는 상위계층 출신 학생들이 석사보다는 박사나 프로페셔널 대학원 등 소득수준이 높은 대학원 학위에 집중되어 있다. 두 번째는 상위계층 출신 학생들이 학부 때는 인문학이나 순수 자연과학을 전공하지만, 대학원에 가서는 공학이나 경영학 등 소득이 높은 전공으로 바꾸는 경향이 있다. 이와 달리 하위계층 출신 학생들은 대학원에서 소득이 높은 전공으로 바꾸는 경향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학사 학위 소지자들만 따로 떼어서, 전공을 통제한 후 분석하면, 가족배경의 영향력이 학사 학위 소지자들에게도 나타난다. 대학이 위대한 평등의 촉진자였던 이유는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였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대학을 졸업한 후 반드시 괜찮은 직장을 가져야 한다는 압박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상위계층 출신이인문학이나 순수 자연과학 등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전공을 선택했기 때문에 생긴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마지막 메커니즘은 학위 취득연령이다. 상위계층 출신 학생은 부모가 전적으로 학비를 부담해주는 경우가 많아서 학위 취득 연령이 하위계층 출신 학생보다 어리다. 하위계층 출신 학생은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에 노동시장에서 경력을 쌓고 돈을 저축해서 대학원에 진학하는 데 반해, 상위계층 출신 학생은 갭이어(gap year) 없이 학부 졸업 직후 대학원에 진학해 상대적으로젊은 나이에 학위를 취득하고, 그 결과 학위 취득 후 노동시장 경력이하위계층 출신 학생보다 많다.

고용과 관련된 언론 보도는 주로 세 가지 지표를 보도한다. 취업자수,실업률, 그리고 고용률이다. 이 중 취업자수는 일자리가 있는 인구수를단순 집계한 것이다. 실업률은 경제활동인구 중 일자리가 없는 사람의비율로 계산한다. 고용률은 현재 일자리가 있는 사람의 수를 전체 인구수로 나눈 비율이다. 이 세 가지 중 가장 안정적인 지표는 고용률이다.

취업자수는 인구의 증강에 따라 변화한다. 과거에 취업자수 증가수가 많았던 가장 큰 이유는 인구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인구 증감에 따라 취업자수 증가폭도 늘어나고 줄어든다. 인구 증가율이 안정적일 때는 취업자수 증감의 숫자만으로도 일자리 현황을 파악할 수 있지만, 인구 구조가 급격히 변화하는 시기에 취업자수는 일자리 현황을 파악하는 지표로 부적절하다.

실업률은 경제활동인구만을 대상으로 하는 한계가 있다. 경제활동인구란 현재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인구를 의미한다. 학업, 가사, 질병, 은퇴, 기타 다른 이유로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없는 인구는 모집단에서제외한다. 문제는 기타 다른 이유에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일자리를 구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취업 활동을 하지 않는 인구도 포함한다.공무원이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수험생은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되지않는다. 그런데 이들이 공무원 모집에 응모하는 순간 경제활동인구에포함되고 실업자가 된다. 경제가 좋아지고 취업자수가 증가할 때 오히려 실업률이 높아지는 아이러니가 이 때문에 발생한다. 경제가 나쁠 때는 굳이 취업을 할려고 노력하지 않던 사람들이 활황이 되면 취업활동을 하면서 실업자로 분류된다.

인구와 경기에 따라 변동이 있는 취업자수와 실업률에 비해 고용률은 취업자수를 전체 인구로 나눈 비율이기 때문에 경기변동이나 인구변화와 무관하다. 일자리 현황이 전반적으로 나아지고 있는지 악화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에 가장 좋은 지표이다.

국가 간 비교에도 고용률이 가장 적절하다. 국가별로 2017~2019년자료를 수집한 OECD 현황4)에 따르면 현재 15-64세 인구 중 고용률이가장 높은 국가는 아이슬란드로 85.6%이고, 가장 낮은 국가는 남아공으로 42.6%이다. OECD 전체 평균은 68.6%이고, 유럽연합은 68.9%이다. 미국은 71.1%, 일본은 77.5%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고용률이70% 이상이다. 한국은 66.6%로 OECD 평균보다 낮다.

20대 청년층의 노동시장 성과의 상대적 악화의 원인에 대해 두 가지 가설을 제시하고 그 타당성을 검증하였다. 첫번째 가설은 기성 세대가 20대 청년층을 배제하고 그 결과 청년층의 장기적 노동시장 성취가 지속적으로 누적적으로 악화될 것이라는 기성세대의 봉쇄 가설>이다. 다른 하나는 20대 청년층의 노동시장 성과 악화를 교육 팽창의 역설적 상황으로 보는 <지체된 노동시장 진입 가설>이다. 일반적으로 교육을 많이 받은 노동자의 고용확률이 높고 소득 또한 높은데, 역설적으로 집단적 측면에서 교육의 팽창이 청년층의 고용율을 낮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경쟁의 심화이다. 교육 팽창은 고등 교육을 받은 노동자의 공급 확대를 의미한다. 이는 곧 괜찮은 일자리, 위계 지위가 높은 제한된 수의 일자리를 둘러싼 경쟁이 격화되는 걸 뜻한다.

20대와 30대 초반의 고용률과 소득의 변화를 코호트별로 추적한 결과 한국의 20대 청년층 고용악화는 교육의 효용극대화를 위한 노동시장을 미루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소득의 측면에서 신규 세대의 교육 효과가 이전 세대보다 낮아지지 않았다. 대신 교육팽창으로 인한 경쟁 격화로 20대 청년층의 고용률이 낮아지고, 노동시장 성취가 악화되었다. 더 이상 노동시장 진입을 미룰 수 없는 30대가 되면, 고용률이 추세적으로 상승한다. 이전 세대와 달리 최근 코호트가 노동시장 진입을 미룰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20대 청년층이 속한 가구의 소득 상승이다. 한국은 혼인 전까지 성인도 독립 가구를 형성하지 않는 비율이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보다 높다. 이러한 문화가 20대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을 지체할 수 있는 자원을 제공하는 측면이 있다.

청년층의 일자리 문제는 최근 세대에서 교육의 효과가 이전 세대보다 낮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교육의 개인적 효과(= 긍정적 교육 프리미엄)와 집단적 효과(= 경쟁 격화) 간의 충돌 때문에 발생한다. 한국에서 청년층 노동시장 문제 해결은 노동시장 고도화를 통한 관리/전문 사무직일자리의 구조적 확대를 통해서 가능하며, 그 외에 단기적 해결은 불가능하다. 청년몰 등 청년층의 창업을 통한 일자리 해결 방식은 지방자치체의 홍보를 위한 이벤트성 행사로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산업구조 고도화를 통한 관리/전문직의 수요 창출이 가장 확실한 청년 대책이다.

한국은 연금제도가 상대적으로 덜발달되어 있어 노인 인구의 노동시장 참여도가 어느 나라보다 높다. 미국의 60대 초반 남성의 고용률은 60% 초반, 프랑스는 30%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한국은 70% 안팎의 높은 고용률을 유지하고 있다. 노후자금이 없으니 나이가 들어도 은퇴를 못하는 것이다. 특히 학력에 따른 연금수령과 노후대비의 격차가 크다. 고연령층 중에서 고학력자는괜찮은 직업과 소득으로 노후 자금에 추가 소득이 있기 때문에 은퇴를미루고 노동시장에 남아있는 데 반해, 저학력 남성의 경우 다른 대책이 없어 궁여지책으로 노동시장에 남아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은 다른국가보다 고연령층에서 학력 간 소득 격차가 크다. 이와는 대조적으로,미국은 사회보장제도가 한국보다는 상대적으로 잘 발달되어 있어 저학력과 고학력의 연금 차이가 상대적으로 적고, 이로 인해 중고령 연령층에서 소득에 있어 교육 프리미엄이 낮다. 미국에서도 사회보장제도의 도입 이전에는 고연령층의 소득불평등이 매우 높았으나, 사회보장세 도입 이후 학력 간 소득 격차가 줄어들고, 빈곤이 줄어들고, 불평등이 낮아졌다.한국은 연금제도가 상대적으로 덜발달되어 있어 노인 인구의 노동시장 참여도가 어느 나라보다 높다. 미국의 60대 초반 남성의 고용률은 60% 초반, 프랑스는 30%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한국은 70% 안팎의 높은 고용률을 유지하고 있다. 노후자금이 없으니 나이가 들어도 은퇴를 못하는 것이다. 특히 학력에 따른 연금수령과 노후대비의 격차가 크다. 고연령층 중에서 고학력자는괜찮은 직업과 소득으로 노후 자금에 추가 소득이 있기 때문에 은퇴를미루고 노동시장에 남아있는 데 반해, 저학력 남성의 경우 다른 대책이 없어 궁여지책으로 노동시장에 남아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은 다른국가보다 고연령층에서 학력 간 소득 격차가 크다. 이와는 대조적으로,미국은 사회보장제도가 한국보다는 상대적으로 잘 발달되어 있어 저학력과 고학력의 연금 차이가 상대적으로 적고, 이로 인해 중고령 연령층에서 소득에 있어 교육 프리미엄이 낮다. 미국에서도 사회보장제도의 도입 이전에는 고연령층의 소득불평등이 매우 높았으나, 사회보장세 도입 이후 학력 간 소득 격차가 줄어들고, 빈곤이 줄어들고, 불평등이 낮아졌다.

소득의 측면에서 대학 교육의 가치는 1980년대 초반에 비해 하락하였다. 하지만 하락 시점은 2000년대 이후 대학 교육을 받은 노동자의 폭발적 공급 시점이 아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은 한국에서 불평등이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시기에 교육 프리미엄이 줄었다. 교육 프리미엄의 변화 시점을 고려하면 인적자본론이나 지위재로서의 교육 이론보다는 사회적 역학 관계에서 교육의 가치가 결정된다.는 이론이 더 설명력이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에서 통신기술산업이 본격적으로 발전하는 시기 이후 대졸 프리미엄은 약간이나마 증가하고 있다. 이 시기는 한국 사회에서 전반적 소득 불평등이 증가한 시기와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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